
민사네 10월 포럼
11일 오전 11시 종로2가 문화공간 <원>에서 민사네 포럼이 열렸습니다. 주제는 “쇠락하는 한국교회와 회복을 위한 과제,“ 발제는 정종훈 교수님(연세대학교 명예교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발제문을 여기 올려 나눕니다. 열띤 토론도 이어졌습니다. 복음과 비복음이 마구 섞여 깊은 혼란에 빠진 한국교회, 비본질적인 것들을 걸러낼 신학적 자기 비판과 자기 검증 능력의 부재가 교회의 본질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켜 신뢰받지 못하는 교회를 결과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5세기 이후 권력과의 타협으로 권력 종교가 되었고, 19세기 이후 자본과의 타협으로 부유함을 자랑하는 교회가 되어, 결국 교회의 영성을 돈과 권력의 포로로 전락시켰습니다. 1980년대 이후 한국 교회가 스스로 안심하며 자랑하는 것도 역시 대형교회가 가진 교인 수에 따른 권력과 물질의 힘입니다. - 박충구 명예교수
[발제문 전문]
1. 한국교회가 쇠락하고 있다
한국교회 안에 가나안 교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가나안 교인이라고 말하면 무슨 말인지 모를 사람도 있다. ‘가나안’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가고자 했던 최종 목적지로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을 상징한다. ‘가나안’을 거꾸로 읽으면 ‘안나가’가 된다. 가나안 교인이란, 이전에는 교회를 나가던 교인이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더 이상 교회에 나가는 것을 포기한 교인을 희화화해서 지칭하는 말이다. 가나안 신도의 증가 원인으로는 교회 내부 문제(권위주의, 세습, 재정 비리, 정치적 편향성 등에 대한 반감), 사회적 변화(개인주의 확산, 종교 의무감 약화, 무종교 문화 확대), 대안적 신앙 형태(온라인 예배, 소모임, 개인적 영성 추구의 선호) 등을 들 수 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한국갤럽에 의뢰해서 2022년 2월부터 11월까지 만 19세 이상 성인 9,182명을 대상으로 한 ‘종교생활과 신앙의식 조사’에 의하면, 현재 가나안 교인들의 수는 개신교 전체 인구 771만 명 가운데 29.3%, 226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개신교 전체 인구 3/10이라면, 적지 않은 숫자이다. 이들 가나안 교인이 아직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오래지 않아서 그것마저 포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우리 주변에는 무늬만 기독교인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기독교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다. 그들은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지,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독교인이라면 자기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특히 정치인들이 그러하다. 정치인들은 교회를 자신의 표밭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고, 선거철 전후가 되면 교회 주변에서 어슬렁댄다. 그들은 자신이 “안수집사다, 권사다, 또는 장로다”라고 말하며 자기 소개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비기독교인 정치인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활동하고 있다. 비기독교인 정치인들과 별로 구별이 되는 것이 없는 그들을 보면, 그저 교인행세나 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욕망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낸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에서 급성장하던 한국교회 교인의 절대 수가 1990년대 중반 이래로 줄어들고 있다. 경제적으로 먹고살 만한 데다 문민 정권의 등장으로 사회가 안정화된 것이 그 요인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2020년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러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각 교단 총회의 통계를 보면, 지난 10년 동안 주요 교단의 경우 수십만 명의 교인 수가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2025년 10월 1일 아이굿뉴스(http://www.igoodnews.net) 기사를 보면, 주요 교단의 교인수를 10년 전(2014년)과 비교할 때, 합동총회는 272만 1,427 명에서 –17%인 224만 2,844명, 통합총회는 280만 9,471명에서 –22%인 219만 919명, 고신총회는 46만 1,746명에서 –18%인 37만 6,629명, 기장총회는 28만 4,160명에서 –33%인 18만 8,159명을 기록할 정도로 교세 하락의 수준이 심각하다.
그런데 장년과 노인의 감소보다 청년과 아동의 감소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드러난다. 지금은 교회마다 예산을 줄이며 어느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향후 20년, 30년이 지나면 대형교회들의 경우 건물의 유지, 보수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다. 이는 서구사회의 교회들이 이미 보여주는 사례이다. 교회의 주축이 되어야 할 장년들이 청년세대로부터 유입되지 않을 때, 한국교회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무엇보다 한국교회가 세상에서 신뢰를 잃고 질타를 당하며 호감을 잃은 것은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2025년 1월 6일 한국기독교 사회문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주요 종교에 대한 비개신교인의 호감도는 불교가 52.9%, 천주교가 48.5%, 원불교가 17.9%였고, 개신교가 제일 낮은 14.3%였다. 주요 종교인에 대한 무종교인의 신뢰도 역시 불교인 39.8%, 천주교인 36.4%, 개신교인이 8.9%였다. 2024년 12월 11일 한국리서치의 조사 발표에 의하면, 2024년 한국의 종교 인구는 개신교 20%, 불교 17%, 천주교 11%, 무종교 51%였는데, 종교 인구로 비중이 제일 큰 개신교가 호감도나 신뢰도 측면에서 가장 낮은 것은 분명 위기이다. 비개신교인들 또는 무종교인들이 한국교회에 호감을 갖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 요인들을 살펴보면, 교회 지도자들의 부끄러운 행태(불투명한 재정 사용과 교회 세습, 성 스캔들), 교인들의 맹목적인 순종과 위선적인 삶, 공격적이고 위압적인 전도방식, 이웃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 극우 정치적 편향성과 정치권력과의 유착,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이단 사이비로 인한 이미지 추락 등으로 나열되고 있다.
2. 한국교회를 쇠락시키는 원인은 무엇일까
오늘 한국교회 쇠락의 원인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양하게 진단할 수 있다. 기독교 신학자로서,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성적인 측면에서 그 원인을 추적하고자 한다.
오늘 한국교회 쇠락의 원인은 근본주의의 오류이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성경의 영감과 무오류성,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육체적 부활, 기적의 사건들에 대한 확신 등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근본주의는 성경의 모든 내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다가, 전체적으로 읽어야 할 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근본주의는 반과학주의, 반지성주의, 율법주의적인 금기에 매몰되어 있어서, 세상의 상식적인 사람들과 정상적으로 소통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한국교회의 근본주의는 반공주의, 이슬람포비아, 반동성애를 마녀사냥하듯이 증오하며 극우 보수주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근본주의자들을 보면, 인종차별, 여성 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의 양태를 띄며, 마치 반인권의 대변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 쇠락의 원인은 교회주의의 집착이다. 예수의 관심은 교회를 세우는 데 있지 않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 예수 공사역의 일성(一聲)에도, 예수의 가르침에 등장하는 수많은 비유와 가르침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핵심이 되고 있다. 지금 세상을 위해서 존재해야 할 기관인 교회가 세상과 담을 치고, 이분법적으로 게토화된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으로 오신 방향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교회가 1970년대와 80년대 양적으로 급성장하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교회 규모와 교인 수 등에 집착하면서 신앙의 질적 성숙을 외면한 결과이다. 더욱이 누구라도 동일하게 환영해야 하는 교회가 사람을 선택적으로 환영하고, 남성 중심의 비민주적인 위계질서로 변질, 고착된 것은 한국교회의 자기모순이라 할 수 있다.
오늘 한국교회 쇠락의 원인은 삼박자 구원식의 맘몬이즘과 이중이기주의이다. 삼박자 구원을 주장하는 자들이 초석으로 삼는 성경 구절이 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 1:2) 그들은 이 짧은 한 구절을 성경의 핵심이라도 되는 것처럼 금과옥조처럼 인용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삼박자 구원론은 기복신앙과 물량주의를 조장하고, 구원의 의미를 육체적인 건강과 물질적인 복으로 왜곡하고 있다. 이는 조건부 신앙의 형태로써 물질적으로 어렵거나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좌절하도록 할 수 있고, 복에만 집중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약화시킬 수 있다. 삼박자 구원론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사명보다 복을 향한 강렬한 욕망을 부추기고, ‘이 세상’에서 좋은 것을 다 누린 후 ‘저 세상’에서 천국까지 차지하라는 식이라서 기독교인들의 이중이기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데, 한국교회는 하나님과 맘몬을 동등한 위치에 두고, 이기심을 부추기며 교인을 끌어모으는 장사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 한국교회 쇠락의 원인은 종교의 자유, 정교분리, 정치참여의 책임에 대한 오해이다. 종교의 자유는 개인이 특정 종교를 선택하고, 그 종교를 자신의 신념에 따라 외부적으로 표현하고 실천할 자유를 의미한다. 또한 국가가 특정 종교를 우대하거나 차별하지 않으며, 국민의 종교 생활을 간섭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종교의 자유는 종교를 갖지 않을 자유와 종교를 자의적으로 간섭하는 국가에 대해서 저항할 자유를 포함하며, 문제가 있는 종교에 대해서 비판할 수 있는 것과 범죄적인 종교 단체에 대해서 국가가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정교분리란 국가와 종교 각각의 고유한 역할을 인정하고, 독립적인 관계를 서로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종교와 정치가 결합하면, 특정 종교가 정치권력을 행사하고, 정치권력이 종교를 강제함으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정교분리 아래에서는 국가종교도, 기독교 왕국도 허용할 수 없다. 그러나 불의한 정치권력에 대해서 종교가 침묵하거나 무관심할 수는 없다. 이때 정치참여의 책임이 대두된다. 왕 중의 왕인 하나님을 역사의 주권자로 고백하는 교회라면, 비민주적, 반인권적, 반평화적, 반통일적 정치권력이나 정권에 대해서 예언자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교회 다수는 이승만 문민 독재정권과 그 이후 군사정권, 최근의 검찰정권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동조했고, 우파 정권에 대해서 정치적, 정서적 일체성을 드러내며 교회의 이익을 추구하는 어리석음을 범해 왔다.
오늘 한국교회 쇠락의 원인은 실천적 무신론자들이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무신론으로는 자연의 위협과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인간의 자율성과 책임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초월적 존재가 만들어졌다는 심리학적 무신론이 있다. 종교의 신성한 존재나 초자연적인 신은 사회가 질서유지를 위해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보는 사회학적 무신론이 있다. 신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가 없으며, 진화론으로 생명의 기원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과학적 무신론이 있다. 신앙을 합리적인 증거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비이성적이며, 종교적 믿음이란 인간의 지적 탐구를 방해하는 것일 뿐이라고 보는 철학적 무신론이 있다. 나아가 종교가 인간의 창조적 잠재력을 억누를 뿐 아니라, 인간을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로 만든다고 비판하는 신학적 무신론이 있다. 이러한 입장 위에 있는 무신론자들은 자신의 이론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거나, 그들 스스로 신적인 체험을 하게 되면, 언제라도 신앙인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자신을 신앙인이라고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사는 코람데오의 삶을 거부하는 실천적인 무신론자들이 제대로 된 신앙인으로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들은 자신을 진실한 신앙인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는 교회는 다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외면하거나 예수를 따르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사는 실천적인 무신론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이야말로 자기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까지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자들이라 말할 수 있다.
3. 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한 과제는 무엇이어야 할까
지금 한국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처럼, 빛을 더 이상 비추지 못하는 고장난 등대처럼, 사회에서의 건강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요한계시록의 책망받은 교회들처럼, 처음 사랑을 버렸고, 사이비 이단적인 가르침을 따르고 있으며, 황금에 눈이 먼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 한국교회는 아무런 열정도 없이 덥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 한가운데 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가 죽도록 충성하는 교회, 가난하지만 영적으로 부유한 교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교회, 생동력이 넘쳐서 주님께 인정받는 교회로 회복하기 위해서 어떤 과제를 설정해야 할까.
한국교회는 회복을 위해서 무엇보다 기독교가 어떤 신앙의 종교인지 그 본질을 인식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 본질대로 살도록 가르쳐야 한다. 요한복음 3장 16절만큼 기독교의 본질을 잘 해명할 수 있는 구절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기독교는 하나님이 세상을 찾아와 은혜를 베푸는 데서 출발하는 은혜의 종교이다. 범죄한 아담과 카인을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처럼,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 나아가 은혜를 베푸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기독교는 독생자 스스로 희생을 감수한 사랑의 종교이다.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 기독교는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와 인격적으로 만나서 그 인격을 체화한 작은 예수로 살아야 한다. 기독교는 믿기만 하면 누구라도 구원에 이르는 만인 평등의 종교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를 만나도 차별하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하며 더불어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 기독교는 영생을 소망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종교이다. 그리스도인은 부활을 소망하며 다른 이들이 지고 있는 ‘고난의 십자가’를 함께 지며 살아야 한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의 본질대로 사는 그리스도인만이 세상의 기쁨이고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다.
한국교회는 회복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생활신앙으로 전환하도록 도전해야 한다. 대다수 교인에게 신앙생활이란 많은 생활 영역 가운데 추가된 또 하나의 생활 영역으로 취급되고 있다. 가정에서의 생활, 직장에서의 생활, 공공영역에서의 생활, 그리고 신앙영역에서의 생활. 기독교 신앙이 이렇게 이해되면, 다른 모든 생활 영역으로부터 추방되고, 자기만의 영역 안에 이분법적으로 갇히고 만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 신앙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궁극적인 방향이고, 인간의 삶 전체를 추동하는 근원적인 힘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해 주는 삶의 방식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기독교 신앙을 주일과 평일을 달리해서 적용할 수 없고, 교회 안과 밖을 구분해서 실행할 수 없다. 기독교 신앙은 모든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언제 어디서나 동일하게 작동해야 하고, 또 동일하게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생활신앙이어야 한다. 가정생활에서든, 직장생활에서든, 또는 공공생활에서든, 그리스도인이 처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유감없이 꽃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생활신앙으로서의 기독교 신앙을 가르치며 도전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회복을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에서 예수를 따라 사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 16:24) 세상에서 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께서 보여주신 삶을 따라가는 제자로서 살아야 한다. 나아가 지금 자신이 처한 삶의 자리에서 예수의 교훈과 삶을 자기 삶으로 살아냄으로써 작은 예수처럼 살아야 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성경을 보면, 귀신들도 예수를 알고 떤다. 예수를 아는 것, 단지 믿는다고 말만 하고, 삶이 동반되지 않는 신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수를 알고 믿는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를 믿기만 하지 말고, 예수를 따라서 살아야 한다. 신앙의 그리스도만 고백하지 말고, 역사적 예수를 따라서 예수처럼 살 것을 결단해야 한다. 예수를 주님이라 부르기만 하지 말고, 예수처럼 하나님의 뜻을 실제로 실행하며 살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회복을 위해서 죽은 후 천국에 가겠다는 사후 신앙에서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겠다는 현세 신앙으로 바꾸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 사랑과 정의에 기초한 평화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억압과 착취가 사라지고 빈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있는 모습 그대로 초대받지만, 초대에 응한 자는 죄된 삶의 방식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야 하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 개체의 존엄성이 존중되고, 누구든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 사람답게 대접하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청지기권이 구현되어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을 이루고 사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되어야 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지금 여기에서 근사치적으로 실현해야 하는 과제이자 책임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막연한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로 도피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평화에 기반한 그분의 뜻과 다스림에 순종함으로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임하도록 하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회복을 위해서 교회 신학에 머물지 말고, 공공신학을 발전시켜야 한다. 신학은 교회를 위한 신학임에 틀림이 없다. 1차적으로 교회와 기독교인의 삶을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신학은 교회와 기독교인만을 위한 신학에 머물지 않고, 공공을 위한 신학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세상과 비기독교인의 삶에도 의미를 줄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신학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의 공공영역 가운데서 기독교인과 교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 어떻게 세상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을지를 질문해야 한다. 교회와 기독교인의 사명은 세상에서 소금이 되고, 세상에서 빛이 되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 5:13,14)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교회의 소금, 교회의 빛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우리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고, 하늘이 땅이 되며, 신성이 세속화하는 성육신의 신비를 따라서 세상으로 나아가 공공영역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특히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사회적인 약자들의 목소리를 우선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경우에도 기독교 신앙이 사적인 것으로 제한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끝으로 한국교회는 회복을 위해서 이웃 종교들과 대화하는 태도를 지향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다종교사회에서 다른 종교들에 대해 드러내는 태도 유형으로 다섯이 있다. 첫째, 배타적인 태도이다. 다종교 상황의 현실 자체를 부인하고, 다른 종교들을 무시하거나 적대시하는 태도이다. 둘째, 우월적인 태도이다. 다른 종교들도 종교의 일반 범주에 있지만,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에는 비견될 수 없다며 비하하는 태도이다. 셋째, 병존적인 태도이다. 다른 종교들의 존재 자체를 현실적으로 인정하지만,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이유나 여유가 없다는 태도이다. 넷째, 종교통합적인 태도이다. 모든 종교는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본질, 동일한 목표를 지니고 있다는 태도이다. 마지막 다섯째, 대화적인 태도이다. 다른 종교들의 입장에서 다른 종교들을 이해하고, 다른 종교들의 진리성에 비추어서 스스로 도전하며, 다른 종교들과 서로 대화하는 가운데 더욱 풍성한 삶에 도달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오늘 우리는 다종교가 공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가 다종교사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면, 평화를 말하는 종교 때문에 평화를 깨뜨리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 한스 큉(Hans Küng)은 “종교 간의 평화 없이 세계평화는 없다.”라는 핵심 명제를 내세운다. 그는 모든 종교가 서로 적대시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서 보편적 윤리를 추구하며 공존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다른 종교들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 우월적인 태도, 병존적인 태도, 종교통합적인 태도를 벗어나서, 이웃 종교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서로 협력하며 공공선을 함께 실현하는 실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4. 한국교회,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끓는 물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와 같다. 시간이 지나면 ‘어찌되겠지’라며 막연한 회복을 기대할 수는 없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경험했던 급성장의 경험에 그대로 안주할 수도 없다. 한국교회는 지금의 무기력하고 부끄러운 현실을 인정하고, 한국교회 초창기 선배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었던 신앙의 순수함과 열정, 사회적 책임을 회복해야 한다. 그들은 척박한 삶의 자리 한가운데서 교육, 의료, 복지, 일제에 대한 저항 등 각 분야에서 카이로스의 사건을 만들며 절망하는 우리 민족을 선도하지 않았나. 이제 한국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직시하고, 환골탈태하는 개혁으로 거듭나야 한다. 40년을 살아온 독수리가 다시 40년을 힘차게 살려면, 자신의 부리와 발톱을 갈고, 깃털을 가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환골탈태의 개혁만이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세상이 자정력을 잃고 있는 한국교회를 질타할 때, 한국교회는 변명하거나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려 하기보다는 겸허하게 청종하고 새 포도주를 위해서 새 부대를 만드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가 위기 가운데 있다고 말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 위기란 위험스러운 기회라서 완전히 끝이 났다고 할 때까지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중요한 지침으로서 1517년 교회개혁 이후 확립된 교회개혁의 5대 원리가 한국교회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인다. 오직 성서(Sola Scriptura), 하나님의 영감이 역사하는 성경을 궁극적인 진리로 삼아 ‘한 손에 성서, 한 손에 신문’을 들고 카이로스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오직 은혜(Sola Gratia), 죄인의 괴수와 같은 자신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원수 같은 사람조차 용서하고 포용하는 성숙한 존재로서 살아야 한다. 오직 믿음(Sola Fide), 믿음은 사랑의 행위를 면제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서 살도록 해야 하고, 스스로 작은 예수처럼 살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창조주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다른 어떤 것, 권력이나 재물의 맘몬에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한국교회가 개혁된 교회로서 언제나 개혁하는 교회(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로서의 자기 정체를 제대로 견지할 때, 비로소 세상의 기쁨과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 제21차 포럼>
일 시: 2025년 10월 11일(토요일) 오전 11시
장 소: 문화공간 온 (종로2가 YMCA 오른쪽)
사회자: 백승종 교수 (역사가, 전 서강대 교수)
강연자: 정종훈 교수 (기독교윤리학자, 연세대 명예교수)
주 제: “쇠락하는 한국교회와 회복을 위한 과제”
참석자: 곽노현, 김경일, 김영, 박충구, 백승종, 서창원, 윤재선, 이근수, 이명재(고문), 이영호(진월), 이흥용, 정갑환, 정종훈, 조성민, 주진오, 홍덕진
지난 20차 포럼에 이어서 21차 포럼 역시 백승종 교수의 사회로 대담 형태로써 진행되었다. 대담 내용을 그대로 정리하여 공유하면 좋겠다는 회원들의 요청으로 경어체를 문어체로 바꾸어 정리했다. 따로 녹음하지 않아 사회자와 강연자가 협력하여 정리했다. 포럼 후의 맛있는 오찬은 김영 공동대표께서, 오찬 후의 차와 커피는 유럽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신 박충구 공동대표께서 제공하셨다.
<대담 정리>
백승종: 정 교수님은 왜 신학을 공부하게 되셨는지?
정종훈: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 목사와는 다른 목사가 되고자 신학을 공부했고, 학부 졸업하고 농촌에서 활동하는 목사가 되기 위해서 장신대 신학대학원을 진학했다. 학자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백승종: 그러셨던 분이 기독교윤리학을 전공하는 교수가 된 것은?
정종훈: 국내든 해외든 공부하는 동안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하겠다는 어느 장학재단의 장학금이 계기가 되어 농촌 목회를 미루고 장신대 대학원에 잠정적으로 진학했다.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문제들과 씨름하기에 가장 좋은 학문이라고 여겨져 기독교윤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대학원의 지도교수가 예수의 제자가 아닌 마르크스의 제자로 취급하는 것에 도전받아, 농촌 목회의 꿈을 뒤로 하고 좋은 교수가 되기 위해 독일에 유학했다. 하나님의 은총과 인도하심으로 귀국 후 1년 2개월만에 관동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백승종: 오늘의 주제는 세 가지. 한국교회 몰락의 징후, 몰락의 이유, 살아날 길은 무엇일까이다.
주제 1: 한국교회 몰락의 징후
백승종: 요즈음 “가나안 교인이 증가한다”라는 말이 회자하는데, 무슨 말인지?
정종훈: ‘가나안’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가고자 했던 최종 목적지, 하나님이 이끄시려는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을 상징, 가나안을 거꾸로 읽으면 ‘안나가’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더 이상 교회에 안 나가는 사람들을 희화화한 표현이다.
백승종: 가나안 교인을 어림해 짐작하면?
정종훈: 2023년 발표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한국기독교 분석 리포트에 의하면, 개신교 전체 인구를 771만 명으로 추산, 그중 가나안 교인이 29.3%로 226만 명 정도라고 예상, 문제는 꾸준히 상승하는 것, 오래지 않아 기독교 신앙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 있어 안타깝다.
백승종: 가나안 교인이 많아진 이유는?
정종훈: 교회 내부 요인은 목회자의 권위주의, 교회 세습, 재정 비리, 정치적 편향성 등이 될 것, 사회변화 요인은 개인주의 팽배, 종교적 의무감 약화, 종교 없이 사는 문화를 꼽을 수 있음, 대안적 신앙 형태가 가능한 시대로서 온라인예배 가능, 소모임과 개인 영성 추구 선호 경향 등 다양한 요인을 꼽을 수 있다.
백승종: 기독교인의 정체성 불분명, 정치인들 어떤가?
정종훈: 주변에 무늬만 기독교인들, 교인과 신앙인 구별되어야, 신앙인이 아닌 교인도 있다는 말, 그들은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지,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을 고백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독교인이라면 자기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특히 정치인들 가운데 그런 교인들 많음, 표밭 관리. 선거철에만 나타나. 자기는 “안수집사다, 권사다, 장로다”라고 떠벌린다. 기독교인의 세계관과 가치를 지닌 정치인으로서 어떤 정책을 개발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고, 정치적 욕망만 추구하는 정치꾼들이다.
백승종: 1995년을 정점으로 개신교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정종훈: 경제가 성장하던 산업화 시절과 민주화를 향한 열망의 시절에 한국교회 급성장, 1995년 정점 이후 마이너스 성장 시대 도래, 더욱이 2020년 코로나 거치면서 상황은 더 심각. 각 교단의 통계 – 지난 10년 동안 수십만 명씩 감소, 특히 저출산으로 인해 청소년과 아동의 감소가 심각. 이런 추세라면, 20, 30년 지나면 대형교회라도 건물 유지, 보수조차 힘들어질 것.
백승종: 한국교회 미래가 없다. 신뢰를 잃고 욕먹는 것은 한국교회의 당연한 문제 아닐까?
정종훈: 한국기독교사회연구원(2025.1.6.) 발표한 자료를 보면, 비(非) 개신교인의 호감도는 불교가 52.9%, 천주교가 48.5%, 원불교가 17.9%였고, 개신교가 제일 낮은 14.3%, 주요 종교인에 대한 무종교인의 신뢰도 역시 불교인 39.8%, 천주교인 36.4%, 개신교인이 8.9%,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상황을 수치가 증명
백승종: 사회자도 이런 교회는 싫다. 그런데 사람들은 교회를 왜 싫어할까?
정종훈: ‘예수천당 불신지옥’과 같은 공격적인 전도방식, 교회 지도자들의 부끄러운 행태(불투명한 재정 사용과 교회 세습, 성 스캔들), 교인들의 맹목적인 순종과 위선적인 삶, 이웃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 극우 정치적 편향성과 정치 권력과의 유착,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이단 사이비로 인한 이미지 추락 등 나열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정도이다.
백승종: 교회의 정치 개입 심각하고, 이단 문제, 재정 비리 등 문제가 너무 많다.
주제 2: 교회를 몰락으로 이끄는 원인, 조금 더 캐보자
백승종: 교회 몰락의 원인,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하게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정종훈: 신학자로서,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성하는 시각에서 진단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기독교 근본주의가 문제, 근본주의는 성서의 문자주의에 기초, 그 결과 반과학주의, 반지성주의, 율법주의에 매몰, 그러다 보니 세상과 정상적인 소통을 하기가 어렵다. 나아가 한국의 근본주의는 반공주의, 이슬람포비아, 반(反)동성애를 주장하며 극우 보수주의를 대변하고 있다.
백승종: 근본주의자들의 인종차별, 여성 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 반인권적 처사는 말못할 정도로 심하다. 교회 몰락의 다른 이유는?
정종훈: 교회주의에 집착. 교회 성장을 교인 수나 교회 재정의 액수 늘리는 것, 화려한 교회 건물을 건축하는 것으로 착각해, 신앙인으로서의 성숙한 삶에 무관심하였다. 그러나 예수의 관심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하는 데 있다. 성경에 보이는 수많은 비유와 가르침도 하나님의 나라가 핵심.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세상, 타자를 위한 교회가 되기는커녕, 세상과 담을 쌓은 채 게토가 되고 있다.
백승종: 몰락의 또 다른 이유도 있을까?
정종훈: 삼박자 구원 식의 맘몬이즘이다. 신앙인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데 한국교회는 하나님과 맘몬을 동등하게 섬겨. 이는 복의 오해로부터 비롯된 것. 성경이 말하는 복은 독점적으로 누리는 것이 복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나누는 것이 복, 다른 사람들에게 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 복이라는 것이다.
백승종: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 1:2) 성경의 핵심처럼 인용하던데?
정종훈: 이 구절은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로서의 사명과 무관,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도구로 오용, 기복신앙과 물량주의를 조장하고, 구원의 의미를 육체적인 건강과 물질적인 복으로 왜곡, 이는 조건부 신앙의 형태로써 물질적으로 어렵거나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좌절하게 하고, 복에만 집중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약화시킨다. 삼박자 구원에 붙잡혀 있는 이들은 세상에서 좋은 것 다 누리고 저 세상의 천국까지 차지하겠다는 이중이기주의자들이다.
백승종: 이 세상에서도 좋은 것 다 누리고, 저세상에서는 천국까지 차지하겠다니? 이중이기주의의 전형이다. 교회 몰락의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궁금.
정종훈: 한국교회는 종교자유, 정교분리, 정치참여에 대한 오해가 심하다. 종교의 자유 – 개인이 특정 종교를 선택하고, 그 종교를 자신의 신념에 따라 외부적으로 표현하고 실천할 자유가 기본, 그러나 자의적인 국가 권력을 거부할 자유, 부정부패한 권력에 대해서 비판할 자유 포함. 정교분리 – 국가와 종교는 원칙적으로 고유한 각각 영역이 있고 어느 한쪽으로 종속될 수 없다. 때문에 국가종교나 기독교 왕국은 결코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독재정권, 군사정권, 검찰정권 등 불의한 정권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무관심할 수 없다. 여기서 정치참여의 책임이 대두된다. 교회는 비민주적, 반인권적, 반평화적, 반통일적 정치권력이나 정권에 대해 예언자처럼 비판하는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정종훈: 교회 쇠락의 원인은 또 있다. 실천적 무신론자들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심리학적 무신론자들, 사회학적 무신론자들, 과학적 무신론자들, 철학적 무신론자들, 신학적 무신론자들은 이론적 무신론자들인데, 이들은 스스로 다양한 각성과 체험을 통해서 신앙인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러나 말로는 신앙인이라고 고백하지만 두려움과 떨림으로 사는 코람데오의 삶을 거부하는, 사실상 신 없이 살며 신 없음을 증명하는 실천적 무신론자들이 문제이다. 이들은 자신을 진실한 신앙인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삶의 변화의 가능성이 없다.
백승종: 근본주의를 비롯해 다양한 원인으로 우리 사회에서 교회가 죽어가고 있다. 심지어는 확신형 가짜 신자들까지 적지 않다니 놀랍다.
주제 3: 교회 회생을 위한 길을 찾아서
백승종: 정교수님은 기독교윤리학자. 맛을 잃은 소금, 빛을 잃은 고장난 등대 같은 한국교회. 교회가 건강성 잃어. 요한계시록의 책망받은 교회들과 같아. 교회가 문제 덩어리. 처음 사랑을 버렸고, 이단적인 가르침을 따르고 있으며, 황금에 눈이 먼 우상숭배에 빠져. 열정도 없이 덥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가 문제이다.
정종훈: 그러나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한국교회가 죽도록 충성하는 교회, 가난하지만 영적으로 부유한 교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교회, 생동력이 넘쳐서 주님께 인정받는 교회로 회생해야 한다. 그날이 와야 하고, 이를 위해 철저히 노력해야 한다.
백승종: 그러자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정종훈: 무엇보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 기독교는 하나님이 세상을 찾아와 은혜를 베푸는 데서 출발하는 은혜의 종교. 그리스도인은 범죄한 아담과 카인을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처럼,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 나아가 은혜를 베푸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기독교는 독생자 스스로 희생을 감수한 사랑의 종교.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 기독교는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 그리스도인은 예수와 인격적으로 만나서 그 인격을 체화한 작은 예수로 살아야 한다. 기독교는 믿기만 하면 누구라도 구원에 이르는 만인 평등의 종교. 그리스도인은 누구를 만나도 차별하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하며 더불어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 기독교는 영생을 소망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종교. 그리스도인은 부활을 소망하며 다른 이들이 지고 있는 ‘고난의 십자가’를 함께 지며 살아야 한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의 본질대로 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만이 세상의 기쁨이고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다.
백승종: 정 교수님은 평상시 생활신앙을 강조하시던데.
정종훈: 생활신앙은 한신대학교를 설립하신 김재준 목사의 용어. 교인들이 보통 신앙생활이란 것을 일상생활에 추가된 또 하나의 생활 영역으로 취급하는 경향. 가정에서의 생활, 일터에서의 생활, 공공영역에서의 생활, 세계 공동체에서의 생활, 그리고 신앙영역에서의 생활. 이런 식으로 나누면 신앙의 영역은 액세서리로 축소되고 만다.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 신앙은 주일과 평일을 달리해서 적용할 수 없고, 교회 안과 밖을 구분해서 실행할 수 없다.
백승종: 신앙은 시간과 공간 초월해서 언제 어디서나 동일하게 작용, 동일하게 표현해야 하는 것.
정종훈: 그렇다. 기독교 신앙은 생활신앙이다. 가정에서든, 일터에서든, 공공영역에서든, 세계 공동체에서든, 기독교 신앙인이 처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유감없이 일관성을 갖고 동일하게 꽃을 피워야 한다.
백승종: 생활신앙으로서 기독교 신앙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말씀. 교회 살리는 또 다른 방법도 있을까?
정종훈: 예수를 믿는 것에서 예수를 따라 사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 16:24)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께서 보여주신 삶을 따르는 제자로서 살아야 한다.
백승종: 작은 예수처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정종훈: 삶이 동반되지 않는 신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것은 세속적인 복을 비는 샤머니즘일 뿐, 기독교 신앙이라 할 수 없다.
백승종: 죽어서 천국 가겠다는 내세 신앙에 고착된 교회의 모습도 문제가 아닌가?
정종훈: 그렇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 사랑과 정의에 기초한 평화의 나라이다. 억압과 착취가 사라지고 빈곤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 누구든 사람답게 대접받고 대접하는 나라. 또한 인간과 자연이 공존을 이루고 더불어 사는 나라. 사후의 천국으로 제한할 수 없다.
백승종: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정종훈: 진정한 신앙인은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로 도피할 것이 아니라, 사랑과 정의와 평화로 대변되는 하나님의 뜻과 다스림에 당장 순종함으로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임하도록 하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한다.
백승종: 깨침이 큰 말씀이다. 그렇다면 신학도 이제는 공공신학으로 나가야 한다는 뜻인가?
정종훈: 신학은 교회와 기독교인만을 위한 신학에 머물지 않고, 공공을 위한 신학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의 공공영역 가운데서 기독교인과 교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 어떻게 세상을 위해서 살 수 있을지를 질문해야 한다. 예수의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 5:13,14)라고 말씀, 이는 세상 한가운데 공공영역에서 소금과 빛으로서 자기 사명을 감당할 것을 촉구하는 말씀이다.
백승종: 특히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 한국교회는 다른 종교들에 대해 지나치게 배타적이다. 불상의 목을 자른 사건도 있었다!
정종훈: 약자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 예수의 정신이고 기독교의 정신이다. 기독교 광신자들 가운데 불상을 훼손하고, 사찰에 인분을 뿌리고, 절 행사 때 전도하는 몰상식한 이들이 있다는 것은 수치, 우리는 다종교사회에서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종교에 대한 인간의 태도 유형으로 다섯이 있다. 첫째, 배타적인 태도이다. 다종교 상황의 현실 자체를 부인하고, 다른 종교들을 무시하거나 적대시하는 태도이다. 둘째, 우월적인 태도이다. 다른 종교들도 종교의 일반 범주에 있지만,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에는 비견될 수 없다며 비하하는 태도이다. 셋째, 병존적인 태도이다. 다른 종교들의 존재 자체를 현실적으로 인정하지만,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이유나 여유가 없다는 태도이다. 넷째, 종교통합적인 태도이다. 모든 종교는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본질, 동일한 목표를 지니고 있다는 태도이다.
백승종: 종교통합적인 태도가 좋지 않을까? 회통론. 모든 종교는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본질, 동일한 목표를 지니고 있다는 것. 이 또한 좋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정종훈: 다른 태도들보다는 발전한 형태로 볼 수 있으나, 다섯째 대화적인 태도로 나아가야 한다. 다른 종교들의 입장에서 다른 종교들을 이해하고, 다른 종교들의 진리성에 비추어서 스스로 도전하며, 다른 종교들과 서로 대화하는 가운데 더욱 풍성한 삶에 도달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오늘 우리는 다종교가 공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은 “종교 간의 평화 없이 세계평화는 없다.”라는 핵심 명제를 내세운 바 있다. 그는 모든 종교가 서로 적대시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서 보편적 윤리를 추구하며 공존해야 할 것을 주장했다.
백승종: 교수님 말씀 종합하면, 배타적인 태도, 우월적인 태도, 병존적인 태도, 종교통합적인 태도를 벗어나서, 이웃 종교들과 대화하고 서로 연대하자는 것이 아닌가.
정종훈: 그렇다. 모든 종교가 공공선을 함께 추구하며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 인권, 평화통일, 사회적 약자들 대변하기 등 함께 할 일이 많다.
백승종: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다. 한국교회의 위기와 관련해서 정 교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정종훈: 진정한 개신교 신앙인이라면, 1517년 이래로 확립된 교회개혁 5대 원리를 지금도 적용하며 살아야 한다고 본다. 오직 성서(Sola Scriptura), 하나님의 영감이 역사하는 성경을 궁극적인 진리로 삼아 ‘한 손에 성서, 한 손에 신문’을 들고 카이로스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오직 은혜(Sola Gratia), 죄인의 괴수와 같은 자신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원수 같은 사람조차 용서하고 포용하는 성숙한 존재로서 살아야 한다. 오직 믿음(Sola Fide), 믿음은 사랑의 행위를 면제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서 살도록 해야 하고, 스스로 작은 예수처럼 살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창조주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다른 어떤 것, 권력이나 재물의 맘몬에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처럼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개혁된 교회로서 언제나 개혁하는 교회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견지하고 살아갈 때, 비로소 세상의 기쁨과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백승종: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스스로 개혁하는 교회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질 때, 비로소 세상의 기쁨과 희망이 될 수 있다! 이런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
<질의응답과 코멘트>
1. 성공회 신부로서 원불교, 천주교 관계자들과 평화운동을 함께한 바 있다. 장일순 선생은 불교를 모르면 기독교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은 다종교사회의 필연이다. 다종교사회에서 교회가 권력기관처럼 행세하면 안 된다.
2. 보수세력의 주축으로 교회가 위치해 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당시 기독교의 해악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뉴라이트 세력들은 미국과 일본, 이승만을 미화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교회를 바로 세우는 길은 역사바로세우기에 있다. 한편으로 진보 기독교인들이 민주화운동, 인권운동, 평화통일운동에 공헌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3. 개신교회 주보 제작 출판업을 하고 있다. 교회가 민주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 안타깝다. 문제가 되는 대형교회들을 보면, 교인들이 담임목사에게 가스라이팅 되어 절대 의존, 맹종하고 있다. 예수의 제자가 아닌 목사의 종으로 처신하고 있다. 주보 제작을 하다 보면, 어느 대형교회가 건축할 때, 은행 융자를 받고자 기존 주보와 다른 주보의 제작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따로 제작하는 주보에 “교회 건축을 위해 은행에 융자받기로 결의했다”는 식의 문구를 넣어달라는 것이다. 물론 교인들이 전체적으로 사용하는 주보에 없는 내용이다. 이렇게 제작하는 주보에 비용을 추가로 지불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어느 대형교회는 교회 정관에 집사 임직 시 1,000만 원, 안수집사와 권사 임직 시 2,000만 원, 장로 임직 시 5,000만 원 등으로 강제적인 헌금을 명시하고 있다. 예수와는 상관이 없는 교회들의 수치스러운 실상이다.
4. 교회의 부정적인 현상은 불교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종교학자 길희성 교수의 <보살예수>는 불교와 기독교의 창조적 만남을 모색한 저서이다. 예수는 유대교의 한계를 넘어 불교 신앙과 접맥했던 것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인간이 불성을 지니고 있고,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입장과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고, 하나님과 파트너십을 가질 만큼 존엄한 존재라는 기독교의 입장은 모두 인간의 존엄성과 가능성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5. 한국사회에 종교 간의 전쟁 경험이 없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한국의 혼종적 문화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극우 개신교인들의 태극기 집회가 기독교를 과잉 대표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미움보다 연민의 정을 느낀다. 암 환자 치료에 있어서 암세포를 파괴하는 치료는 새로운 위험을 초래할 수 있지만, 암세포를 정상적인 세포를 전환하는 치료는 부작용이 없다. 마찬가지로 증오보다 사랑과 포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종교, 특히 기독교의 이름으로 폭력이 자행되었던 제주 4.3과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을 잊어서는 안 된다.
6. 무엇이 진정한 기독교냐는 질문이 필요하다. 거품을 벗기고 남는 액기스를 찾아야 한다. 예수의 길은 좁은 길,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이었다. 기독교의 본질을 견지하는 소수 남은 자들은 여전히 있고, 그들의 존재가 희망이다.
7. 대형교회 목사들, 하나님의 청지기, 예수의 제자이기보다 맘몬주의자, 바알숭배자이다. 전광훈, 손현보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개혁 말고는 없다. 사도신경을 보면 예수의 탄생과 죽음, 부활은 언급하고 있지만, 정작 예수의 삶은 빠져 있다. 예수의 삶을 채워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신앙의 그리스도에 머물러 있기에 역사적 예수의 삶과 교훈을 직시하며 작은 예수로 살아갈 것을 도전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의 어록을 담고 있는 도마복음을 통해서 기독교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내적 성찰과 깨달음을 강조하고,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남녀평등에 관심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8. 과연 기독교 내부에 자정능력이 있는가. 비록 작은 몸짓이지만, 천주교의 ‘정의구현전국사제단’처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의 ‘예장대전환’이라든지, 감리교의 ‘새물결’이라든지, 최근에 만들어진 ‘한국교회와 공공성 포럼’이라든지, 나름 자정하려는 노력이 있는 것은 희망이다. 천주교의 사회교리와 같은 개신교의 노력, 공공신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9. 한국교회가 유교적 가치와 무속신앙에 빠져 있고, 시민사회와의 연결고리가 약한 것이 문제이다. 신앙은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사네 역시 ‘정의실천’을 향해 아무리 그 길이 어려워도 끝까지 인내하며 나아가기를 바란다. - 정종훈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