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영성

상처 받은 날, 나는 어디를 바라보는가? - 멸시의 말 앞에서 하늘 보좌로 눈을 들다 ** 말씀: 시편 123편 1절 싫은 소리, 비난때문에

ree610 2026. 11. 2. 07:09

상처 받은 날, 나는 어디를 바라보는가? - 멸시의 말 앞에서 하늘 보좌로 눈을 들다 ** 말씀: 시편 123편 1절

지금까지 살면서 싫은 소리, 비난하는 말 때문에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무심한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지고, 비웃는 표정 하나에 살아온 시간까지 부정당한 듯하다. 그 사람은 멀리 떠났는데, 그의 말은 내 안에 남아 나를 심판한다.
시인도 멸시와 조롱에 지쳐 있다(3-4절). 그러나 그는 그 말들을 곱씹는 대신, 아픔을 품은 채 눈을 들어 기도한다.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시 123:1)

1. 땅의 말이 내 마음의 왕좌에 앉을 때

우리는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살피곤 한다. 인정받으면 안도하고, 무시당하면 자기 존재까지 의심한다. 누군가의 평가가 마음속 왕좌에 앉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을 조롱하는 이들의 말을 하나님께 아뢴다.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시 123:4).
기도 안에서 그 상처가 비로소 말할 자리를 얻는다. 하나님을 향하는 사람도 아플 수 있다. 믿음은 그 아픔까지 주님께 가져가는 신뢰이다.

2. 하늘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

“하늘에 계시는”은 문자적으로 “하늘에 앉아 계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루터성경은 “하늘에서 왕좌에 앉아 계시는 분”(der du im Himmel thronst)으로 옮긴다. 여기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드러난다.
하늘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권력과 판단을 넘어 계심을 고백하는 언어이다. 땅의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마지막 판결의 자리는 하나님께 속한다. 나를 낮추는 사람이 내 존재의 주인일 수 없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하늘의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에서 멀리 계실까? 시인은 그분께 은혜를 구한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3절).
하나님의 높으심은 땅의 교만을 상대화하고, 멸시받는 사람에게 호소할 자리를 열어 준다.

3. “당신께” 향하는 눈

히브리어 문장은 “나”가 아니라 “당신께”(2인칭 단수)로 시작한다. 개역개정은 하나님을 직접 부르는 문맥을 살려 “주여”라고 옮겼다. 온 세상을 다스리는 분을 “당신”이라 부르는 이 부름 안에서 하나님의 높으심과 인격적인 가까움이 만난다.
그런데 1절의 “내가”는 2절부터 “우리”로 넓어진다. 나의 상처를 아뢰던 기도가 함께 멸시받는 이들의 아픔을 품는다. 현실이 곧바로 바뀌지는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곁에서 함께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 나를 아프게 한 말에서 눈을 들어 주님께 향할 때, 나와 함께 하는 이웃도 보이기 시작한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
기독교 신앙은 이 기도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듣는다. 하늘의 하나님은 성육신하신 아들을 통해 우리의 수치와 고통 가운데 가까이 오셨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을 아버지께 아뢰며, 자신의 뜻을 아버지의 뜻에 맡기셨다(막 14:36). 하나님은 그분을 죽음에서 일으키셨다. 인간의 정죄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생명의 판결이 드러났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말씀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시편 123편의 시인의 눈은 이제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를 향한다.
지금 나를 붙잡고 억누르는 말 하나를 주님께 아뢰어 본다. 천천히 눈을 들고 기도한다.
“주님, 이 말이 아니라 당신께서 내 마음의 왕좌에 앉아 주소서.”
그리고 상처받은 이웃과 눈을 맞춘다. 하늘의 은혜가 우리의 관계에도 스며들도록.

** 기도문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
비난의 말에 붙들린 우리 마음을 당신 앞에 펼쳐 놓습니다.
고칠 것은 겸손히 고치되, 멸시의 말에는 우리 존재를 내어 주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다스리심을 신뢰하며 은혜를 기다릴 힘을 주소서.
우리가 받은 은혜로 상처받은 이웃의 존엄을 지켜 주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