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평안은 툭 던져지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10장 34절에서 예수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ree610 2026. 3. 24. 10:46

평안은 툭 던져지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10장 34절에서 예수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화평은 “에이레네(εἰρήνη)”,
주다는 “발로(βάλλω)”다.
둘 다 아주 낯선 단어는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쉽게 지나쳐 버리기 쉽다.

ㅤ보통은 “화평을 주다”로 읽고 넘어간다.
우리말도 자연스럽고, 영어 성경도 bring, send 같은 말로 옮긴다.
그런데 마태는 여기서 조금 더 거친 결의 동사를 쓴다. 발로는 본래 무엇을 던지고 내던지는 데 자주 쓰이는 말이다.

ㅤ누가복음의 평행본문은 같은 자리에
“디도미(δίδωμι)”, 더 일반적인 “주다”를 쓴다.
이 차이는 오히려 본문을 더 선명하게 보게 한다.
핵심은 단순히 마태가 더 거친 동사를 택했다는 데만 있지 않다.

마태가 발로를 쓰든,
누가가 디도미를 쓰든,
두 본문이 함께 보여 주는 방향은 같다.

그리스도의 화평은 사람이 아무 변화도 없이 가만히 서 있는데 수동적으로 얹히는 안녕이 아니라는 것이다.

ㅤ예수는 여기서 화평 자체를 부정하시는 것이 아니다. 화평을 값싸게 생각하는 태도를 깨뜨리시는 것이다.
아무 것도 버리지 않고, 아무 것도 꺾이지 않고,
자기 생각과 자기 고집은 그대로 붙든 채,
어느 날 평안만 툭 떨어지듯 얻게 되리라고 기대하지 말라는 말씀에 가깝다.

마태가 발로라는 동사를 쓴 것은,
그 화평이 그렇게 손쉽게 던져지듯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더 생생하게 들리게 한다.

ㅤ본문의 흐름도 그렇다.
바로 뒤에서 예수는 가족 안의 분열을 말씀하시고, 이어서 자기를 부인하는 길을 요구하신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이 갈라지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않으면 합당하지 않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여기서 화평은 갈등이
전혀 없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를 따르기에 생기는 충돌을 피하지 않고, 그 길에서 자기 자신이 깨어지고 꺾이는 자가 마침내 누리게 되는 평안에 가깝다.

ㅤ그래서 이 말씀은 “예수는 화평을 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 반대로, 예수께서 주시는 화평이 어떤 종류의 화평인지를 바로잡는 말씀이다.
주님은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내 삶의 구조는 하나도 바꾸지 않은 채
안녕만 던져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자기 욕심은 그대로 붙들고,
자기 뜻은 하나도 내려놓지 않고,
자기 고집은 전혀 부서지지 않은 채 평안하기만을 바라는 것은 복음이 약속하는 화평이 아니다.

ㅤ어쩌면 역설적이지만, 참된 에이레네, 참된 샬롬은 분투 없이 오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분투는 자기 힘으로 평안을 쟁취하라는 뜻이 아니다.
예수를 따르기 때문에 생기는 충돌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는 길에서 물러서지 않는 싸움이다.
그 싸움 없이 평안만 바라면, 결국 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화평이 아니라 자기 안락일 가능성이 크다.

ㅤ예수는 그저 내 욕심을 이루어 주시고,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옛다 하고 던져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이 주시는 화평은 더 깊고 더 무겁다.
그것은 수동적으로 떨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주님을 따라가는 길에서 비로소 누리게 되는 화평이다.
그러니 아무 것도 내려놓지 않은 채 평안만 구할 수는 없다. 자기 자신이 죽지 않으려 하면서 참된 평화를 원할 수는 없다.

십자가를 피하면서 화평만 얻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평안은 툭 던져지는 것이 아니다.
- 김한원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