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바닥의 수고>>
자고 일어났더니 집값이 올랐다거나, 뜻밖의 큰돈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흔듭니다. 수고 없이 얻는 것, 과정을 건너뛴 채 손에 쥐는 것을 사람들은 복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조금 다른 말을 합니다.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것, 그것이 복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128편 2절에 나오는 “여기아 카페카(יְגִיעַ כַּפֶּיךָ)”는 문자 그대로 말하면 “네 손바닥의 수고”, 곧 네 손이 애써 이루어 낸 결실입니다. 이 표현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처음에는 복이라는 말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열매는 원하지만 수고는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면 기다림은 줄이고, 땀은 피하고, 과정 없이 결실만 얻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손의 수고 끝에 오는 복보다 우연히 떨어진 행운이 더 눈부셔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바로 그 “여기아 카페카(יְגִיעַ כַּפֶּיךָ)”를 복의 자리로 불러냅니다. 네 손이 애쓴 만큼 먹는 삶, 네 수고가 헛되지 않고 너 자신의 양식으로 돌아오는 삶, 그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각보다 무거운 선언입니다. 세상에는 수고한 만큼 돌아오지 않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애쓴 사람이 열매를 누리지 못하고, 힘쓴 사람이 오히려 지치기만 하는 일도 흔합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자기 손의 수고가 자기 삶을 지탱하는 양식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생계 이상의 질서이며 은혜입니다.
그래서 시편은 이어서 “아슈레카 베토브 라크(אַשְׁרֶיךָ וְטֹוב לָךְ)”라고 말합니다. “네가 복되며, 네게 좋으리로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복은 요란한 성공이 아닙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극적인 반전도 아닙니다. 오히려 내 손의 수고가 내 삶으로 돌아오고, 그 열매를 평안히 누릴 수 있는 상태입니다. 성경은 바로 그 자리를 복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복은 대개 사람이 흥분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이 제 몫의 삶을 정직하게 살아 내고 그 열매를 누리는 자리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소득을 복으로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갑자기 쏟아지는 큰 자원은 복이라기보다 시험이 되기 쉽습니다. 수고의 시간을 지나며 생기는 절제와 분별, 감사와 인내 없이 주어진 것은 손에 들어와도 삶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결과만 말하지 않고, 그 결과를 담아낼 사람의 자리까지 함께 보는 듯합니다. “여기아 카페카(יְגִיעַ כַּפֶּיךָ)”는 단순히 “고생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 수고를 통과하며 사람이 조금씩 단단해지는 자리까지 품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기적은 하늘에서 금가루가 떨어지는 일이 아니라, “여기아 카페카(יְגִיעַ כַּפֶּיךָ)”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손바닥의 굳은살은 초라한 흔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허황한 요행을 좇지 않고 오늘을 견디어 낸 표지입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향해 성경은 “아슈레카 베토브 라크(אַשְׁרֶיךָ וְטֹוב לָךְ)”라고 말합니다.
오늘 식탁 위에 놓인 소박한 한 끼가 당신의 “여기아 카페카(יְגִיעַ כַּפֶּיךָ)”라면, 그것은 생각보다 깊은 복입니다. 사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한 것이라고 해도 열매 거두기가 만만치 않음을 다 알고 있습니다. 크고 눈부신 것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오래 가는 복은 대개 그런 자리에서 옵니다. 벼락은 순간 번쩍이고 지나가지만, 손의 수고로 얻은 열매는 삶을 조용히 지탱합니다. 그래서 시편은 우리를 들뜨게 하기보다 제자리로 돌려놓습니다. 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여기아 카페카(יְגִיעַ כַּפֶּיךָ)”, 바로 그 자리에 이미 복이 있습니다. - 김한원 노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