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몰라도, 하나님은 아신다!”
- 불안을 품고 맡기는 믿음 -
* 말씀: 창세기 43장 14절
야곱의 삶은 ‘잃음’으로 얼룩져 있다. 사랑하던 라헬을 잃었고, 요셉을 잃었다. 이제 남은 마지막 베냐민을 잃을까 두려웠다. 그러나 기근은 가족을 몰아세웠고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그때 야곱이 꺼내 든 언어는 기도였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창 43:14).
이 한 절에는 야곱의 떨리는 기도, 그리고 ‘내맡김’의 믿음이 담겨 있다.
1. ‘전능하신 하나님’: 통제의 끝에서 시작되는 기도
야곱은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El Shaddai)이라 부른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는 신앙의 고백이다. 야곱은 지금 계산할 수 있는 길을 이미 다 써버렸다. 마침내 자신의 통제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다시 호명한다.
믿음은 불안을 제거하는 기술이 아니다. 믿음은 불안을 품은 채 하나님을 부르는 용기다. 나의 통제가 끝나는 자리에서 기도가 시작된다. 신앙은 '더 이상 내 힘으로는 안 될 때', 진정한 언어인 기도를 배운다.
2. 긍휼의 문: 불안 조차 하나님께 맡기다
야곱의 기도는 흥미롭다. 그는 문제를 없애달라고만 기도하지 않는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사람’(요셉)의 마음에 은혜가 임하기를 구한다. ‘은혜’(rahamim: 긍휼)는 ‘자궁’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는 생명을 품는 깊은 긍휼이다. 야곱은 모든 과정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긴다.
관계의 새로운 문은 전략보다는 자비로 열린다. 여기서 믿음의 지혜가 드러난다. 우리는 관계가 흔들릴 때 더 붙잡으려 한다. 더 설득하고, 더 압박하고, 더 관리하려 한다. 그러나 야곱은 이제 거꾸로 간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며, 관계의 열쇠를 하나님께 넘겨드린다.
3.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성숙한 ‘내맡김’
이 문장은 패배가 아니라 성숙의 언어다. 야곱은 ‘절대 잃지 않을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믿음은 미래를 미화하지 않는다. 믿음은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께 내 삶을 맡기는 결단이다. 흔들림이 다 사라져서 믿는 것이 아니다. 흔들리면서도 하나님께 방향을 고정하는 것이 믿음이다. 고통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의 신앙은 비로소 '희망의 낙관'이 아니라 '신뢰의 현실'이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맡김은 더 깊어진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다'. 야곱은 두려움 속에서 아들들을 보냈고, 하나님은 사랑 속에서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다. 십자가는 잃음처럼 보였으나, 부활은 잃음의 끝에서 시작된 새 생명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나는 몰라도, 하나님은 아신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우리의 삶에도 야곱을 불안하게 했던 ‘그 사람’이 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 내 손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관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 말이다. 그 위기 앞에서 두 가지 유혹을 받는다. 하나는 모든 것을 움켜쥐려는 강박이다. 다른 하나는 손을 그냥 놓아버리는 냉소다. 그런데 야곱은 제 3의 길을 보여 준다. 불안을 품되, 과감하게 하나님께 내맡기는 길이다.
이제 불안은 남아도, 맡김은 시작된다. 그리고 맡김이 시작되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새롭게 길을 여신다. 우리가 할 일은 모든 답을 얻는 것이 아니다. 오늘 한 걸음을 믿음으로 내딛는 용기를 지니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작은 출애굽'이다. 두려움의 땅에서 신뢰의 땅으로!
** 기도문
전능하신(엘 샤다이) 하나님,
우리 손이 닿지 않는 사건 앞에서 주님을 부릅니다.
불안을 없애기보다, 불안을 품고 주님께 나아갑니다.
사람의 마음을 우리 힘으로 움직이려는 조급함을 내려놓게 하소서.
잃을까 두려운 '베냐민'조차 주님께 맡기는 용기를 주소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신 예수님,
"나는 몰라도, 하나님은 아신다" 고백하며 오늘도 한 걸음 순종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