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성’을 일구는 단 한 존재 >
1. 한 사람의 삶의 여정에서 내가 나의 온전한 모습을 지켜내면서 따스함과 환대의 경험을 하게 하는 ‘고향성’은 어떻게 창출되고 지속되는가. 오랫동안 지리적으로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면서 살아온 나는 이 ‘고향성’에 대하여 나의 사적 삶이나 학문적 삶에서 늘 관심 가져왔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부유하는 삶을 사는 이들은 외면적 구조만이 아니라 의식적인 내면세계에서 자신만의 ‘고향성’을 창출하고자 한다.
2. 한국에서 텍사스로 와서 아직 짐 정리도 충분히 하지 않았는데, 3일만에 다시 호주 멜버른으로 향하는 준비를 하고 있다. 모나쉬 대학교 (Monash University)에서 열리는 워크샵에서의 발제 준비도 마무리 짓고, 짐도 싸면서 여러 생각들을 하다가 문득 이번 여름 한국에서 경험한 ‘고향성’을 떠올리며 미소 짓게 된다.
3. 지난 6월 어느 날, 전북 정읍과 고창을 당일로 방문한 적이 있다. 나의 생애 최초로 방문하는 지역이었다. 미국에서 수십 년 변호사로 사시다가, 최근 전북 고창으로 은퇴하신 K 변호사님이 계신데, 그 분으로부터 고창 방문의 초대를 받고서 어느 날, 지인과 함께 아침 일찍 용산에서 KTX를 타고 정읍으로 갔었다. 생전 처음 가본 정읍과 고창은 내게 여러 가지 점에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후에 K 변호사님과 이메일을 주고받았는데, 이메일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쓰셨다.
“이제 고창을 베이스캠프라 생각하시고, 아무 때나 시간나실 때 오셔서 고국산천을 즐기시고, 또 각 지역사회에서 좋은 생각과 꿈을 삶 속에 녹여내며 살아가시는 분들도 만나면 참 좋을 거예요. 제가 모두 준비해 놓고 있겠습니다.”
4. 이 구절이 담긴 이메일을 읽고서 나는 그때, 왜 이 구절에 내 마음이 돌연히 훈훈해지고, 마치 돌아가면 언제든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환영해 주는 ‘고향성’을 느끼는지, 또한 “아무 때나…”라는 표현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의미할 수 있는가 등 나의 일기장에 긴 글을 썼었다. 문제 많은 이 삶의 여정을 살아가는데 한편으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저 단 한 사람, 단 한 존재의 환대의 시선과 몸짓만으로도 이 황량할 수 있는 삶을 넘어서는 ‘고향성’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5. 나는 누군가에게 그러한 고향성을 경험하게 하는 존재가 되고 있는가. 또한 나는 상투성이 아닌 “아무때나…”가 품고 있는 진정성의 환대를 경험하게 하는, 그러한 한 존재를 내 삶의 여정에서 조우하고 그 소중한 관계의 정원을 가꾸고 있는가. 오늘 나에게 다시 찾아오는 물음이다. 이 물음들을 생각하는데, 한국에서 여러 분들로 부터 받아 거실 창가 테이블에 놓은 편지들, 그리고 조약돌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 하다.
- 강남순 교수의 글과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