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 문제에 대한 북장로회 젊은 목사 선교사들의 진정서 (1940) 신사참배 문제는 선교사역과 교육 및 전도 사업에 큰 희생을 초래

신사참배 문제에 대한 북장로회 젊은 목사 선교사들의 진정서 (1940)
(자료1 요약)
신사참배 문제는 선교사역과 교육 및 전도 사업에 큰 희생을 초래했다. 선교회의 젊은 선교사들은 1936년의 선교회 교육정책과 1939년의 전도사역 정책을 온전히 승인한다. 선교 본부가 이 정책을 온전히 지지하기를 바란다.
신사참배는 일본 신화의 유명무실한 신들과 왕실의 조상,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가미에 대한 숭배와 타협하는 것이다. 신사참배는 십계명에 대한 위반이라는 것이 한국 교인들의 보편적 신념이다.
우리는 선교 본부의 총무가 이 상황에 대처하려는 현지 선교회의 정책에 완전히 공감하고 협조할 것을 요청한다. 이 신념을 위해 본 선교회는 교육, 성경학교, 신학교, 당회권을 희생했다. 선교부 총무의 편지에서 그가 한국 기독교인이 교육 기관을 위해 헌납했다는 것 외에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읽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기독교의 영적 투쟁의 전선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본부의 신앙적 충성을 소망한다. 그것이 없다면 선교회의 사기는 심각하게 손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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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정병준 교수
* 1940년 6-7월 경, 신사참배를 수용하고 선교사업(교육 및 전도)을 지속하라는 선교 본부의 총무의 입장에 대해 북장로회의 8명의 젊은 목사 선교사들은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만장일치로 "진정서"에 서명했다.
* 킨슬러는 1940년 7월 4일 미국으로 떠나는 로즈(Harry Andrew Rhodes)에게 편지를 써서 선교 본부에 가서 "진정서"의 입장을 잘 전달해 줄 것을 부탁했다. (자료2)
* 서명한 선교사 명단
⑴ Baird, Richard Hamilton (배위취)/ 프린스턴
1922-1961 강계/서울 1957년에 재내한 한국선교부 총무
⑵ DeCamp, E. Otto (감의도)/프린스턴
1937-76 청주/서울/ CBS설립. 연세대 이사, NCC매스콤위원회 위원장
⑶ Livesay, Joseph B. (리부서) /프린스턴
1923-41 대구/재령
⑷ Adams, Edward A. (안두화)/ 매코믹
1921-1963 재령/대구/서울 계명대학장, 기독교세계봉사회(CWS) 한국지부책임
⑸ Clark, Allen Degray (곽안전)/ 프린스턴
1933-73 만주/청주/서울 1953년 재내한 성경번역, 강의
⑹ Voelkel, Harold (옥호열)/ 프린스턴
1929-1967 안동/서울 군목 제도창설, 함흥철수 주도, 숭실대 교수
⑺ Lyon, William B. (라의온)/ 뉴욕성경신학교
1923-1953 대구, 계성학교 공업반 담당
⑻ Kinsler, Francis (권세열)/ 프린스턴
1928-70 평양/대구/서울, 숭실교수, 장신대교수. 성경구락부 창립
* 이들 중 6명은 프린스턴 신학교 동문으로 강한 결속이 있었고, 배위취, 안두화, 곽안전은 한국선교사(배위량, 안의와, 곽안련)의 2세로 한국에서 자랐다.
* 리부서를 제외한 모두는 해방 이후 한국으로 돌아왔고,1953년 대구를 떠난 라의온 외에 모두는 1960-1970년대까지 한국장로교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 이들은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의 갈등 속에서 박형룡을 지지해서 1951년 "총회신학교"를 세웠고, 1959년 에큐메니칼 NAE 갈등이 일어날 때에는 에큐메니칼측을 지지했다.
* 1959년 장로교 분열에서 선교사들이 “과거의 정통주의를 떠나 에큐메니칼 신학으로 경도되었다”라고 주장하는 일부 해석은 부적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