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 이야기 : 성 금요일> 성 금요일은 일견 무겁고 침통한 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숨을 거둔 날이니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교회력 이야기 : 성 금요일>
성 금요일은 일견 무겁고 침통한 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숨을 거둔 날이니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겐 특별한 기억의 날이 됩니다. 오늘날 ‘성 금요일’이라는 명칭은 거룩하다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지만, 기독교 초기엔 그저 ‘(안식일) 준비의 날’(παρασκευή)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대인에게 금요일 낮 시간은 단지 안식일을 준비하는 일상적인 시간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과 절망 가운데 은혜(부활)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이해됩니다.
2세기 말 교부인 테르툴리아누스가 성 금요일을 ‘위대한 금식의 날’로 표현한 것을 보면, [각주] 성금요일 금식과 애도의 전통은 아주 이른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기억하려고 금요일마다 함께 모여 예배하고 금식했는데, 이것이 오늘까지 이어지는 금요예배의 유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로마제국의 공인된 종교가 된 4세기 이후부터 성금요일은 부활절과 이어지는 특별한 날로 더욱 부각 되기 시작합니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이날은 유일하게 성찬(미사) 없는 특별한 날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예식도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이들은 성당에 모여 주님 수난 예식과 함께 십자가를 경배하는 예식으로 이날을 기념합니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거룩한 대(大) 금요일’이라고 부르면서 12 수난 복음 구절을 읽고 예수님의 관을 모시고 행진하는 예식을 진행합니다.
루터교회와 일부 개신교회는 성 금요일을 성찬 예배의 날로 지키기도 합니다. 좀 더 특별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오후 3시경에 기도회와 성찬 예배를 드리며, 종종 여러 교파가 한데 모여 연합예배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는 가톨릭의 금식과 애도 중심 전통과 달리 십자가의 구원적 의미를 성찬으로 강조하는 개신교회의 신학적 차이를 보여줍니다. 성서적 관점에서 본다면, 성찬은 요한복음 6:51에서 예수님이 “살아 있는 떡”이라 하신 말씀을 상기시키며 죽음 속에서도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강조합니다.
교회 전통이 다양하고 예배 형식이 다양한 것처럼 성 금요일 예배도 교회가 추구하는 신학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식으로 공존합니다. 서방교회 전통으로만 따지면 이날은 유일하게 성찬례가 거행되지 않는 슬픔과 참회의 날입니다. 이에 비해, 같은 서방교회 전통에 서 있지만, 루터교회와 개신교회는 교파의 역사와 신학에 따라 오히려 성찬의 의미를 더욱 드러내는 날로 지키곤 합니다. 개신교에서 이해하는 성 금요일은 하나님 편에선 당신의 아들이 죽은 슬픔의 날이지만, 인간의 편에선 구원의 날입니다. 이렇게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이날 일부 교회 전통에선 그리스도의 성찬을 나누며 우리를 위해 하신 구원의 사건을 묵상하기도 합니다.
영어로 금요일을 "Good Friday"라고 부릅니다. 이 명칭의 유래는 보통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됩니다.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론은 "good"이 고대 영어에서 '거룩한(holy)'을 의미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고, 또 다른 설명은 게르만어계 단어 "Goddes"에서 파생되어 "God's Friday(하나님의 금요일)" 또는 "Holy Friday(성금요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언어학적 분석도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보자면, 십자가 사건이 부활과 구원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좋은/선한/거룩한’ 금요일로 불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날이라면 금식보다는 성찬 나누기 가장 좋은 날(Good Friday)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성 금요일의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정교회와 로마가톨릭, 루터교회, 성공회, 감리교회, 일부 장로교회들이 금식과 더불어 특별 예배로 예수님의 희생을 기념합니다.
모라비안 교회 같은 경우엔 교인들이 묻힌 공동묘지를 찾아 주변을 정리하고 묘비를 청소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요즘은 ‘어둠의 예배’(Tenebrae)로 성 금요일을 기념하는 교회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원래 이 예식은 성 금요일에 해당하는 특별 예식이 아니라 성 주간 삼일(목/금/토) 특별한 삼각형 촛대에 촛불을 켜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저녁기도회(Matins)의 일반적인 이름입니다. 로마가톨릭 예배 의식서를 추적해보면, 테네브레 예배는 적어도 9세기부터 시작해서 1950년 교황 비오 12세가 전례 개혁을 하기 전까지 성삼일(금토일) 저녁마다 이 의식을 거행했다고 알려집니다.[각주]
그런데 요즘은 로마가톨릭의 이 예식을 개신교회에서 변형하여 사용하는데, 예수님의 가상칠언을 줄거리 삼아 진행하는 촛불 예배로 특화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는 개신교회의 성 금요일 ‘어둠의 예배’(테네브레)는 이름만 오래되었고, 그 내용과 순서는 전통 테네브레와 거의 상관 없는 현대적인 예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초기 루터교회에선 이날 성찬 예배에 앞서 물고기(IXTUS) 요리를 나누며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의 구원자라는 초대교회 신앙을 되새겼다고 합니다.
성 금요일 저녁 성찬 예배 전에 교인들이 함께 큰 물고기를 저녁 공동식사 메뉴로 나누며 그 의미를 새기는 것도 이날을 의미 있게 기념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성 금요일 예배를 다양하게 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예배형식을 두고 ‘정통’이라고 목청 높일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왜 이런 예식을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디지털 예배 플랫폼을 활용하여 전 세계적 연합예배나 사회 정의와 연계된 성금요일 묵상도 상상해 볼 만 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성 금요일의 의미는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을 정도로 막중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국가 대부분은 이날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고 미국에서도 12개 주에서 공휴일로 지킵니다.
게다가 독일 같은 일부 국가에선 성 주간 동안 경마와 카지노 같은 사행성 사업을 금지하고 심지어 공적인 모임이나 방송에서 춤을 추는 것도 금지하는 법령이 지금까지 유효하게 발효될 정도입니다.
그만큼 기독교 문화권에선 성 금요일과 성 주간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집니다.
성 금요일과 성 토요일의 전례색은 검은색입니다. 제단 장식은 완전히 비우는 게 좋습니다. 검은색은 죽음, 어둠, 부정의 상징입니다. 이날 예배에서 회중은 찬송을 부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침묵과 부정, 어둠 속에서 성찬을 나누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숨긴 부활의 소망을 바라고 기도합니다.
교회력 색깔: 검정
* 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당신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수난의 끝으로 내몰고 끝내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당신의 사랑이라는 것을 신앙의 신비 가운데 깨닫게 하소서. 주님은 우리를 모든 죄에서 자유케 하시고 당신의 은혜 아래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 구원의 역사를 잊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십자가에 숨겨진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기억하게 하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
덧).. 음.. 우리 교회는 성금요일 오후 6시 온 교우들이 모여 도미찜을 나눠 먹습니다. 그런 다음 7:30분에 성찬 예배합니다. 도미찜 먹고 싶으면 오세요~ 환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