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2:17 - 3:12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것> 찬송 49장 하나님이 언약하신 그대로 Ⅰ.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약속 (말 3:1-

말라기 2:17 - 3:12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것>
찬송 49장 하나님이 언약하신 그대로
Ⅰ.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약속 (말 3:1-6)
본 장의 첫 구절은 불경건한 무신론자들, 곧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조롱하던 자들의 물음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으로 보인다. "그가 여기 계시니라. 그는 바로 문 가까이 계시니라. 오랫 동안 고대되었던 메시야는 곧 나타나실 것이라. 그리고 그는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임하노라`고 말씀하실 것이라."
(1) 메시야 앞에 올 세례 요한에 대해 예언되었는데, 이 세례 요한은 선지자 이사야가 `주의 길`을 `예비하는`자로 예언했었다(사 40:3).
1) 그는 `하나님의 사자`이다. 세례 요한은 그의 사역을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받았다. 그는 사람들을 불러 회개시키고 고침을 받게 한 선지자들처럼 하나님의 사자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를 선지자로 보았던 것이다.
2) 그는 그리스도의 선구자이다. 그는 백성들을 그들의 아비인 아브라함에 관한 자신감(그들은 구세주 없이도 아브라함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으로부터 떼어놓고, 메시야가 이제 가까이에 와 계심을 알려 주는 것으로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자`가 되었다.
(2) 메시야 자신이 오실 것에 대해 예언되었다.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세상을 버리셨다고 너희가 생각하는 그 `공의의 하나님`이 임하실 것이라. 오랫 동안 `오실 자`로 불리워졌던 그 메시야가 이제 곧 오시리라."
1) 그는 아도나이(Adonai) 곧 `주님`이시다. 세상에 근거를 두고 있는 기반이요 기초로서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마 28:18), `만유의 주`(행 10:36)가 되신다.
2) 그는 `언약의 사자` 혹은 `언약의 천사`로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평화를 중재하시기 위해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 그리스도는 이 `언약의 천사`로서 그의 중재에 의해 언약이 체결되고 제정되었다. 그 언약은 우리 모든 사람의 `구원이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히 2:3)가 되게 한다. 그는 `언약의 주`이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낮추사 `언약의 사자`가 되셨다.
3) 그는 경건한 유대인들이 기다리며 바라고 있던 `저희의 구하는 자` `저희의 사모하는 자`이시다. 그를 찾고 기다리는 가운데, 그들은 예루살렘의 구속을 기대했고,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다(눅 2:25,38). 예수를 찾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기쁨을 발견할 것이다. 만일 그가 우리 마음의 바라던 이가 되신다면 그는 또한 우리 마음의 기쁨이 되실 것이다.
4) 그는 `홀연히 오실 것이다.` 그의 오심은 가까우며, 우리는 족장들이 보았던 것처럼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서 보게 되다.
5) 그는 `그의 전에 임하실` 것이다. 예루살렘에 있는 이 성전은 최근에 세워진 것이다. 그의 전 `그의 아버지의 집`(요 2:16)이다.
(3) 그가 오시는 데에는 위대한 목적이 있었다(2절). 그는 그들이 찾는 분으로, 비록 그가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 오시지 않고, 세상으로 하여금 그를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고 오신다 할지라도,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할 것인가.` 심지어 그가 육신을 입고 계실 때조차도 그에게는 아무도 그의 변하신 모습을 증거하고자 그 앞에 설 수 없을 정도로 영광과 권능의 빛이 발산되었다.
1) 복음은 선하게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 선을 행할 것이며, 그들에게 그것은 생명으로 쫓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될 것이다(3절). 그가...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금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즉, 그는 그들의 마음 속을 성결케 하실 것이다. 그는 불로 금과 은을 깨끗이 하듯이 그들을 깨끗케 하실 것인데, 왜냐하면 그가 성령과 불로(마 3:11), 곧 불과 같이 일하시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기 때문이다.
2) 복음은 사악함을 계속 고수하려고 결심하는 사람들을 거스리는 증거임이 드러날 것이다(5절). 이것은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느냐`고 한 그들의 패역에 대한 명백한 대답이다. "너희는 그가 계시는 곳을 알게 될 것이며, 너희의 두려움과 혼란을 인하여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 왜냐하면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가까이 임할 것이기 때문이라."
(4) 이 모든 것에 대해 인준하신다(6절).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악행들(5절)에 대한 심판이 속히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변역지 아니하시는 주 앞에 실행되고야 말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그의 언약에 신실하셨음을 인하여 그가 변치 않는 하나님이심을 말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행동에서 거짓되었고 변덕스러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시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그의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보존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들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다. 즉 우리는 `변하시지 않는`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고로 `우리가 소멸되지 아니한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라기 3:9)
**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
* 메시야께서 오시는 목적(3:1-3)
본문에서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자 곧 메시야가 임할 것을 예언하는데 그 목적은 레위인들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인은 모든 성도를 가리키며, 정결케 함은 그리스도의 속죄와 성결을 통한 성화 운동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방법(3:7-12)
말라기는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림으로 하나님께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적 표시이며, 하나님의 모든 소유와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 되심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십일조와 헌금은 온전한 믿음, 자발적인 헌신의 의지와 기쁨과 감사로 드려야 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일조와 헌물을 즐겁게 드리게 하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