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삶
좋은 하루 -류상선 10년 만에 만난 후배가 말했다. ‘형님도 많이 늙었네요.“ 내가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이 녀석은 알아버렸나
ree610
2024. 11. 5. 09:04

좋은 하루
- 류상선 -
10년 만에 만난 후배가 말했다.
‘형님도 많이 늙었네요.“
내가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이 녀석은 알아버렸나 보다.
세월을 도대체 이길 수 없다면
내어 줄 것 내어주더라도
얻어낼 것은 얻어와야 하겠다.
부드러운 몸은 내어주어도
부드러운 마음은 얻어내야겠고,
천진난만한 미소는 내어주어도
그윽한 미소는 얻어내야 하고,
얼굴의 검버섯은 허락해도
그것을
그것으로 바라보는 깨달음은 얻어내야 하겠다.
뜨거운 여름은 내어주어도
아늑한 가을은 얻어내야겠고,
찬란한 아침햇살은 내어주어도
수줍은 저녁놀은 간직해야 하고,
겉사람은 내어주어도
속사람은 얻어내야 하겠다.
목숨은 내어주어도
뜻은 얻어내야 하고
땅은 내어주어도
하늘은 얻어내야 하겠다.
그 10년 동안에 사랑을 하고,
결혼도 하고, 두 아이도 낳았다.
후배 놈이 볼 땐 늙기만 한 세월 동안
그 아이들은 태어나고, 걷고, 말을 하고,
이제는 미소도 짓고, 사랑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좋은
아빠가 되어 있었다.
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것들은
아이들에게서 더욱 해맑게 빛나고 있는 것이다.
손해 본 것이 하나도 없는 시간이었다.
얻어낸 것이 너무나 많은 세월이었다.
아침, 밝아서 좋고
저녁, 넉넉해서 좋다.
좋은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