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삶
골목 피아노 집의 봄
ree610
2024. 3. 8. 08:29

골목 피아노 집의 봄
ㅡ 이준관
골목 피아노 집에
악보를 들고 소녀들은
피아노를 배우러 온다.
해는 피아노 집 지붕 위에
높은음자리표로 걸려 있다.
피아노 소리를 쪼아먹고
솜병아리처럼 노오란 부리를 재재거리며
피어나는 꽃들.
햇빛과 봄비가 섞인 흙으로 키운
화분의 꽃을 팔러
꽃장수는 피아노 집에 찾아온다.
빨랫줄에 앉아
첫 비행을 예감하며
눈부시게 날개를 떠는 새끼 제비들.
골목에 핀 냉이꽃도
피아노 집 빨랫줄의 빨래도
오늘은 하이얀 건반이다.
피아노 집 담장 아래 핀
조그만 풍차 같은 민들레꽃.
내 마음 속에서도
노오란 풍차가 돈다.
나는 삶이라는 악보를
옆구리에 끼고
골목 피아노 집에
봄을 배우러 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