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삶

시래기. 시인 김영석

ree610 2024. 2. 24. 08:32

시래기

ㅡ  김 영석

초겨울 해거름
뒤곁에 걸어 놓은 가마솥에
무청 시래기를 삶는다
시래기를 삶는 냄새에서는
외양간 옆 쇠죽가마에서 끓이는
모락모락 하얀 김이 나는
쇠여물 냄새가 난다
외양간 옆에는 헛간이 있고
헛간에는 쇠죽을 쑤는
날콩과 마른 풀과 볏짚단이 쌓여 있고
그 옆에는 시래기와 메주가
짚에 엮여 나란히 걸려 있었지
초 저녁 희끗희끗 내리는 눈은
외양간과 헛간 앞에 먼저 날렸지

뒷산 억새꽃을 바라보며
겨울 나는 먹거리로
김장 끝에 시래기를 삶는다
시래기를 삶는 냄새 속에
따뜻하고 동그란
밀감 빛 등불이 우련히 비친다
그 알같이 동그란 불빛 안에서
한식구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소는 하얀 김이 나는
쇠여물을 먹고 있었지
밖에서는 바람이 불고
흰 눈이 이리저리 날리고 있었지.